조직은 왜 어떤 이별은 축복으로, 어떤 이별은 침묵으로 남기는가

월간HRD플러스

December 15, 2025

11/30(일)은 전북 현대 최철순 선수의 은퇴경기와 은퇴식이 있던 날이다. 축구에서 20년을 같은 팀에서 보낸다는 건 단순한 재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량, 태도, 관계, 가치관... 이 모든 요소가 오랜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맞물릴 때에만 가능한 기록이다.

전북 현대 최철순 선수의 은퇴는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HRD와 조직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커리어는 한 조직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최철순은 화려한 기술이나 스타 마케팅보다 주어진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선수로 기억된다. 팀이 요구하는 순간, 그게 무엇이든 몸을 던져 실행하고 필요하다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드는 사람. 조직에서 이런 구성원은 많지 않다. 정해진 목표를 넘어 역할 자체에 사명감을 느끼는 사람. 그는 자신의 강점을 명확히 알고 이를 끊임없이 연마하며 팀에 기여했다. 그 태도는 장기적 신뢰를 구축하고 조직이 안심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가 되었다. 말 그대로, 업에 대한 장인 정신이었다.

부상으로 뛸 수 없었던 그 시기, 그는 팬석에 올라가 응원을 독려했다. 그 장면은 지금도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다. 최철순 선수는 단순한 경기력 이상의 무언가를 쌓아온 선수였다. 바로 문화적 자본이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와 공동의 목표를 향한 진심 어린 에너지, 팀 전체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정서적 영향력 등이다. 이 모든 것은 숫자로 기록되지 않지만 조직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이다.

전북 현대가 K리그에서 이루어낸 10번의 우승. 그리고 그 10번의 우승을 한 자리에서 전부 함께 경험한 유일한 선수, 최철순. 이 기록은 단순한 개인 커리어가 아니라 전북이라는 조직문화의 탄탄함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수원 삼성 팬으로서 속이 쓰리다...

우승은 스타 몇 명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조직을 떠받친 구성원들의 태도가 팀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이 다시 행동 규범이 된다. 최철순은 그 기준을 만들고 지켜낸 사람 중 하나였다. 전북은 이 정도까지는 반드시 해낸다는 문화를 그의 플레이로 증명해왔다.

20년을 같은 팀에서 버티는 것. 말은 쉽지만, 누구에게나 가능한 선택은 아니다. 부상, 슬럼프, 외부 제안...수많은 갈림길에서 그는 남음을 선택했다. 조직에서 한 사람의 잔류는 충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 가치관의 일관성, 심리적 안전감, 조직과의 상호 신뢰.

이 세 요소가 충족될 때에 비로소 가능한 선택이다. 이런 구성원이 존재하는 조직은 '여기 오래 머무는 것이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후배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하게 된다.

나는 수원 삼성 팬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유형의 선수는 상대할 때 참 성가셨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투지, 쉽게 허용하지 않는 끈질김, 우리 선수들을 끝까지 괴롭히던 그 집요함. 하지만 스포츠의 묘미는 진짜 프로 앞에서는 결국 존중이 생긴다는 것이다. 최철순은 그 존중을 스스로의 커리어로 증명했다. 그의 경력은 오래 기억될 가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야를 조금 넓혀 마지막 장면의 온도를 비교해보려 한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에서 김부장은 팀원들이 회의 중일 때 말없이 자기 자리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나 먼저 가보겠다"라는 말조차 남기지 않는 이유는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25년의 시간을 소리 없이 접는다.



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멀리서 백상무만이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그 순간 백상무의 휴대폰에는 김낙수 부장이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갔다는 인사팀장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집에 돌아온 김부장은 아내 박하진 앞에서 말을 꺼내지 못한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남편의 모습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어떤 상황인지 눈치를 채고 남편이 무안하지 않게 그를 따뜻하게 품어 안아준다. 김부장은 그저 그녀의 품에 안긴 채 긴 숨을 내쉰다. 25년을 버티고도 그의 마지막은 너무 조용했고, 너무 무거웠다.

반면 전북 현대 최철순의 마지막은 달랐다. 팬들은 그의 이름을 불렀고, 동료들은 그의 등을 두드렸으며, 구단은 영구결번이라는 명예로운 선물을 준비했다. 20년 동안 보여준 투지, 꾸준함, 헌신...그 모든 것이 그의 마지막을 박수와 감사, 축복으로 채웠다.



지난 8월 쿠팡 시리즈에서 손흥민 선수의 플레이에는 어렴풋한 작별의 기운이 스며 있었다. 마치 토트넘과의 작별을 암시하는 듯한 공기 속에서 뛰던 날, 팬들은 슬픔이 아닌 조건 없는 축복을 보냈다.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보내는 경험.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은 어떤 무대에서도 빛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걸.

떠나는 자가 축복 받는다는 건 그가 남긴 시간이 누군가의 성장을 이끌었고, 조직의 기준을 만들었고, 관계의 온도를 높였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떠나는 순간조차 아름답게 빛난다. 그건 단순한 운이 아니라 그가 살아낸 시간의 품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마지막에서 배운다. 조직도, 팀도, 팬도 떠나는 사람을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이 떠날 때, 그에게 축복이 따라오는 조직, 그런 조직이야 말로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를 가진 조직이다.

그것이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의 끝이자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야 할 시작이기 때문이다.

최철순 선수의 은퇴를 아쉬워하고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 월간HRD플러스 이동관 주재기자 글입니다.